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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자!/캐나다 Canada

[캐나다 록키 여행] Grand Forks 맛집 Borschi Bowl_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by 드론타고 여행 2019.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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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BC Grand Forks The Borscht Bowl 2019년 7월

그랜드폭스에 있는 러시아 음식점 보르시 보울에 가봤습니다. 


여행책자를 보다보니 옆에 있는 캐틀라라는 마을이 러시아의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근처에 있는 마을인 그랜드 포크에서 보르쉬 보울에 가면 러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하여 들러봤습니다. 정말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었어요. 찾는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처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가봅니다. ​

영업시간 찍는다는게 잘 보이지도 않네요. 암튼 들어갑니다. 

특별메뉴가 있네요. 홈메이드 주스 중 체리민트 주스를 눈여겨 봅니다. 

여름메뉴가 있네요. 아 포테이토 딜... 감자국에 향료넣은 맛이죠. 보르쉬보울에 왔으니 보르쉬 시킬랍니다. 

특별할 것 없는 식당인데 사람들이 계속 와요. 안에 빵굽는 냄새가 매우 좋았어요. 

메뉴를 봐봅니다. Doukhobor 요리라고 써있네요. 어떤 의미인지 맨 밑에 적어놨습니다. 

러시아 정교에서 파생된 종파 중 하나로 징병을 거부하여 박해받게 되고 흘러흘러 많은 이들이 캐나다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식당이 있는 곳 옆 마을 Castlegar에 정착하게 되고 그 주변에 퍼져 살면서 이런 식당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종류수가 무지 많은데 마음먹은데로 보르쉬 큰 한그릇씩 시키고 저는 전부터 먹고 싶었던 블린 하나를 시켜봅니다. 여기서는 Nalesniki 라고 부르네요. 또 Fruit Pyroshky를 시켰어요. 지금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이 제철이라 기대해볼만합니다. 아이스크림은 옵션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여기는 빵을 직접 구우니까 베이크 음식 위주로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생뚱맞게 멕시칸도 메뉴에 있네요. 

저기 너머로 빵을 열심히 만드느라 다들 바빠요. 수제빵 다 사먹고 싶었어요. 

우선 나온 체리민트 핸드메이드 주스입니다. 자극적인 맛은 덜하지만 상큼해요. 

우선 나온 보르쉬 스프입니다. 이건 곡물빵을 선택해서 같이 나온거에요. 버터 발라서 나오는데 스프랑 같이 먹으면 꿀입니다. 보르쉬는 고깃국물로 하는데 두호보르들은 고기를 잘 안먹었나봐요. 여기 보르쉬는 채소로만 만든거래요. 그래도 충분히 맛있어요. 

다른 보르쉬에서는 빵을 사워도우로 골랐어요. 보들하면서도 쫀득한 맛이 있고 곡물빵은 고소합니다. 

이 스프만 먹어도 배가 거뜬히 찹니다. 이대로 먹으니 심심해서 사워크림 달라고 해서 스프에 풀어 먹었어요. 러시아에서는 스메따나라고 하죠. 

알아서 주진 않으니 꼭 더 달라고 해서 먹어야만 합니다. 

보르쉬 열심히 먹고 있으니 블린이 나옵니다. 제가 생각했던 얇은 블린이 아니라 폭신한 팬케익같았어요. 그래서 엥... 하면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녹인버터, 사워크림, 블루베리 조린것이 얹어 나와요. 블린 안에는 리코타 치즈가 말려있어요. 

블루베리 신선함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 듯한 푸근한 맛이었어요. 이건 꼭 해먹어볼거에요. 

녹인버터가 무슨 역할을 하겠냐 하면서 먹었는데 그릇까지 먹는 줄 알았어요. 

블린 다 먹고 나니 나온 피라쉬키입니다. 일단 예쁘죠? 막 구워서 나온거라 뜨끈뜨끈 했어요. 

크기는 제 주먹보다 살짝 큰정도에요. 

반을 갈라봅니다. 안에 과일이 가득해요. 라즈베리, 딸기 등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아서 새콤해요. 

그 신선한 새콤함을 아이스크림 단맛이 확 잡아주면서 입맛을 더 돋구어 줍니다. 

눈깜빡할 사이에 해치웁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디저트류를 이렇게 맛있게 식사처럼 먹다니... 

사워도우 브레드입니다. 예약이라고 써있네요. 결국 다른 빵집에서 사워도우 브레드 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게 먹진 못했어요. 도구와 잼의 부재로.... 

두호보르의 삶을 잠깐이나마 음식으로 공감해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동중에 가는길이라면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이상 서울 수도권 용인 기흥 성남 분당 화성 동탄 수원 영통 경기동남부 드론 국가 자격증 학원 서울비행교육원(진코치,드론의 미래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Dukhobor (Russian: "Spirit Wrestler"), member of a Russian peasant religious sect, prominent in the 18th century, that rejected all external authority, including the Bible, in favour of direct individual revelation.

두호보르 ( Dukhobor, 또는 doukhobor)로, 러시아어로 '靈의 투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 농민들 중 18세기에 널리 퍼진 한 종파에 속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성서를 비롯한 모든 외부의 권위를 거부하고 개인이 직접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The liturgical reforms of Patriarch Nikon in 1652 and the opening of Russia to Western influences by Tsar Peter the Great (reigned 1682-1721) provoked an opposition that manifested itself in the proliferation of mystical--usually either orgiastic or rationalist--evangelist sects. The Dukhobors, combining features of both types of reaction, lived mainly in southern Russia. They rejected the authority of both church and state, relying instead on direct individual revelation supplemented by a growing body of canticles and proverbs handed down orally, called the "Book of Life." Priests and sacraments were abolished, the only ceremony being the sobraniye ("meeting"), at which prayers were chanted around a table laid with bread, salt, and water. Their egalitarian and pacifist beliefs, together with their proselytizing activities and refusal to accept conscription, provoked sporadic persecutions from 1773 onward. They were several times deported and resettled in unfamiliar territory.

때마침 니콘 총대주교의 전례(典禮) 개혁(1652)과 표트르 대제(1682~1721 재위)의 서구화 개방정책에 반대하는 신비주의적 복음주의 종파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었는데 두호보르는 그 신비주의적인 종파들의 2가지 경향인 열광적 신비주의와 이성적 신비주의를 결합시켰다. 주로 남부 러시아에 많이 살았던 이들은 교회와 국가의 권위를 거부하며 신이 개인에게 내리는 계시에 의존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성가와 격언들을 계속 덧붙여 자꾸 불어난 책, 이른바 '생명의 책'(Book of Life)을 신봉했다. 성직자, 성찬, 세례 의식을 모두 폐지하고 빵·소금·물을 차려 놓은 탁자 주위에서 기도하는 모임(sobraniye)만을 행했다. 평등주의·평화주의 교리를 갖고 개종(改宗) 활동을 벌였으며, 징병을 거부했기 때문에 1773년 이후 이따금씩 박해를 받아 여러 차례 추방되어 낯선 땅에 다시 정착하곤 했다.

 

Leo Tolstoy, the Russian novelist whose principles of moral and spiritual reform found eager acceptance among the Dukhobors in the late 19th century, successfully petitioned the tsar to allow the persecuted Christian Community of Universal Brotherhood, as they were known after 1886, to emigrate. Through funds collected by English Quakers, 7,500 reached Canada by 1899; 12,000 remained in Russia. The Canadian government granted them land on easy terms in Saskatchewan and exemption from conscription. Some settled well, but one group started a series of nudist protest pilgrimages, prompting Peter Verigin, the leader of the "large party" faction of the Dukhobors, to go to Canada to restore order. In 1908 he founded a communal settlement of 6,000 in British Columbia, which prospered until his death in 1924. His son's lack of leadership and the Great Depression of the 1930s ruined the communal enterprises, and they were not later restarted.

19세기말 두호보르들은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가 제안한 도덕과 영적(靈的)인 거듭남에 관한 원칙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황제에게 청원해 이들이 해외로 이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1886년부터는 '세계 동포 그리스도교 공동체'(Christian Community of Universal Brotherhood)라고 알려졌고, 영국 퀘이커교도들이 모은 기금으로 1899년까지 7,500명이 캐나다로 이주해 1만 2,000명이 러시아에 남게 되었다. 캐나다 정부는 그들에게 서스캐처원에 좋은 조건으로 땅을 마련해 주고 징병도 면제해 주었으나, 일부만 정착하고 한 무리는 저항하는 뜻으로 나체 순례여행을 떠났다. 이에 두호보르의 다수파 지도자 표트르 베리긴이 캐나다로 가서 질서 회복에 나섰다. 1908년 베리긴은 브리티시컬럼비아에 6,000명이 살 공동체 마을을 세웠고 이 마을은 1924년 그가 죽을 때까지 번창했으나, 뒤를 이은 아들의 지도력 부족과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공동체 사업들이 파산한 뒤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The Dukhobors, renamed in 1939 the Union of Spiritual Communities of Christ, have clashed with the Canadian government because of their noncompliance with land, tax, and education laws. They have striven to avoid schooling on the ground that "the letter killeth" and that "schools teach war." Since World War II the sect has become more prosperous, but extremist elements still survive in a distinct group called the Sons of Freedom. The Sons of Freedom have continued nudist parades, arson, and dynamiting, burning their own as well as their neighbours' and government property to show contempt for material goods. Another group of independents has assimilated into Canadian society.

 

  1939년에 두호보르들은 '그리스도의 영적 공동체'(Union of Spiritual Communities of Christ)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캐나다의 토지법, 세제와 교육법을 따르지 않아 정부와 충돌했고,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학교는 전쟁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학교교육을 반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더욱 번성했으나 '자유의 아들단'(Sons of Freedom)이라는 집단 내부의 특이한 극단분자들이 여전히 잔존해 물질에 대한 경멸을 과시할 셈으로 나체행진을 하고 방화, 다이너마이트 폭파 등 자신들과 이웃·정부 재산을 불태우는 일들을 계속했다. 이에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은 캐나다사회의 일원으로 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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